듀얼리스트는 인리 수복 중 - 23절-영구결투제국 세프템 팬픽-듀얼리스트는 인리수복 중

1년이 지나고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선배!"
"이봐요, 살았어요?!"
“...간신히.“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한 리츠카는 가쁜 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칼리굴라와 미스터 T들은 전부 패배와 동시에 빛과 입자가 되어 산산이 부셔지며 사라졌다. 그들의 자리에 남은 것은 육안으로 봐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지박신의 카드들 뿐.

"...이렇게 되면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냐."

온 몸의 힘을 전부 끌어 모아 써버린 것 같은 깊은 피로감이 남았지만 뻗어있을 여유는 없었다. 리츠카는 품에서 3장의 카드를 꺼내 아직 집어넣지 않은 듀얼 디스크에 세팅했다.
룰러의 심볼이 1장, 라이더의 심볼이 2장 그려진 3장의 카드가 빛을 발하면서 입자가 되어 흩어지더니, 이내 익숙한 형상을 이루고는 리츠카의 눈앞에 나타났다.

"부탁할게, 잔느, 마리, 마르타 씨."
"상황은 칼데아에서 확인했습니다. 우선 저 불길한 것부터 수거하죠."
"움직이기 힘들어 보이네요. ...타라스크. 마스터를 업혀 놓을 테니까 떨어트리지 마요. 마리, 보살펴 줘요."

리츠카의 카드를 통해서 특이점으로 전송되어 오기 전에, 미리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세 서번트들은 상세한 명령은 없었지만 곧장 자신들이 해야 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잔느와 마르타는 자신들의 대마력과 성인의 스킬를 통해 지박신의 카드를 회수하는 역할을 맡고, 마르타의 용인 타라스크와 마리가 지친 리츠카 일행을 보호하며 경계를 서면서 일행은 간신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어둠의 게임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겨우 풀리는 기분이었다.

"...쯧."

타라스크의 위에 올려져 심신 안정을 취하는 리츠카의 근처에서 쉬면서, 지박신의 카드를 회수하는 잔느 쪽을 본 잔느 얼터는 대놓고 혀를 차며 못 마땅하다는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야기는 많겠지만, 지금은 특이점 수복에 힘쓰고 이야기는 돌아가서 해요."
"나는 할 이야기 없네요. 성녀님. 나는 너를 무시할 거고, 너도 날 없는 걸로 대해. 그러면 되잖아?"
"......"

대놓고 상관 말라는 투로 말을 끊어버린 잔느 얼터의 말에 잔느는 난처한 웃음을 지어보였고, 그것을 옆에서 본 마르타는 진지한 얼굴로 충고한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너 말이야. 나중에 진짜 후회하게 될 걸. 창피해서."
"하아? 뭐가 창피하다는 건데요. 아, 제 존재 자체가 잔 다르크를 괴롭히는거라서요? 그거 좋네요. 제가 원하는거에요."
"......"

이 어린 양을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라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본 마르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람...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거야?"

마리의 말 대로 어둠의 게임은 끝났다. 하지만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갈리아의 야영지도, 주둔 중이던 로마의 군사들도, 그 어느 것 하나 남지 않고 황폐화된 대지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된거죠?"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거겠지. 프랑스 때처럼─"
"─사태가 급변한 것입니다."

갑자기 들려온 외국식 억양의 남자 목소리에 모두가 급히 태세를 갖추며 뒤를 돌았다.

"어, 당신은..."
"그때, 그 캐스터인가."

목소리의 주인을 본 마슈와 아르토리아는 눈앞의 사람의 정체를 곧바로 알아보았다.
지난밤에 갑작스럽게 나타났던, 우자트의 눈 캐스터라 소개했던, 긴 은발로 한쪽 눈가를 가린 붉은 정장의 남자가 기척도 없이 일행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

서번트들은 이 타이밍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서번트에 경계했지만, 그 서번트의 모습을 본 리츠카의 두 눈동자는 크게 놀라 동그랗게 되어버렸다.
그런 리츠카의 반응에 우자트의 눈 캐스터라 자신을 말한 남자는 이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신사스러운 예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절 아시겠지요. 후지마루 Girl. 당신의 시대의 사람이었으니까요."

모를 리가 있을까.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카드를 가진 듀얼리스트들이 절대 모를 리 없다.
지금은 듀얼 몬스터즈라 불리는 매직&위저드의 창시자.
그리고 자신의 시대에서는 이미 고인인 남자.

"페, 페가서스 J. 크로퍼드?!"

*****

"마스터의 시대에 근접한 근시대의 영령이라고요...? 말이 되나요, 그게?"

리츠카의 설명 및 칼데아를 통해 눈앞의 캐스터가 리츠카와 동시대를 살았던 실존 인물이었던 것이 확인되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래의 영령이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내가 겪은 기억 속에는 그 예가 있기도 하지."
"그러면 이야기를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Ladies?"
“...당신은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요?”

일행의 물음에 페가서스는 입을 열었다.

“이 특이점을 만들어낸 흑막의 존재와 그들이 있는 장소입니다.”
“뭐라고요?”
“Me의 서번트의 능력은 여러분과 달리 정면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는 적합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요.”

페가서스는 자신의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치우며 자신의 왼쪽 눈을 보여주었다. 우자트의 눈을 형상화한 황금색의 의안이 그의 안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줄곧 인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당도할 이들을 기다리며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준비가 마슈에게 준 카드들?”
“그렇습니다. 그 카드들은 별들의─”

─쿠르르릉!

페가서스가 뭐라고 설명하려던 찰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이 그들의 대화를 끊어버렸다.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겠군요. 지박신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균형을 뒤흔들었습니다.”
“뭔 소리인지 간결하게 말하라고 당신.”
“<그들>이 원하는 인리정초 파괴의 Countdown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뭐라고요?!“

잔느 얼터의 신경질적인 말에 대답한 페가서스의 말에 일행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서번트의 말은 사실이야! 그 굉음이 울린 직후부터 이쪽도 경보가 끊이지 않아!]
“가면서 이야기하죠! 장소는 아신다고 했죠?”
“어쩌실 생각입니까?”
“당연한 이야기를.”
“그 흑막이란 녀석이 계획을 완수하기 전에 끝장을 내야지!”

*****

“닥터, 그쪽도 확인되나요?”
[그래 이쪽도 확인되었어. 수도 로마와 닮은 도시야! 저기가 이 특이점의 흑막의 본거지인거겠지.]

페가서스의 안내에 따라 이동을 시작한 일행은 곧 육안으로 현 시대의 수도 로마와 닮은 도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심하네.”

그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빛바랜 건물들과 잠들 듯이 쓰러진 수많은 병사들 뿐. 네로가 통치하고 있는 현 시대의 올바른 로마의 거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저것들 전부 빈껍데기네요. 영혼이 없어요.”
“...레프 라이놀 교수.”

페가서스가 이곳까지 오면서 이야기한 흑막의 정체. 칼데아의 모두가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소장을 죽이고 세계가 끝났다고 말한 위험인물입니다. 동정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래.”
[마슈, 리츠카. 충분히 주의해줘. 이쪽은 노이즈 때문에 정확한 계측이 불가능하니까. 지난번에는 성배의 힘으로 용종이 소환되었고, 서번트와 융합도 시도되었어. 이번에도 지박신 같은 규격 외의 존재가 나타났으니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알았어!”
“알겠습니다!”
[잠깐, 왕궁의 입구로 보이는 곳에서 서번트의 반응이 감지됐어! 가까워, 전방에 곧 보일거야!]

통신기 너머에서 외친 로망의 말에 성벽을 넘어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왕궁으로 나아가고 있던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저건?! 네로!”

로망이 지정한 위치. 왕궁의 입구에는 서있는 자와 무릎을 꿇은 자가 있었다. 서있는 이는 화려한 장미꽃을 연상하게 하는 굳은 표정의 네로 클라우디우스. 그리고 무릎을 꿇은 거구의 구릿빛 피부의 남자는─

*****

“......용맹스런 자여. 실로, 용감하구나. 그래야 말로, 당대 로마를 이끄는 자겠지.”
“...큿...”

장밋빛의 그녀와 거구의 사내의 사이에서 실체화 되었던 정령이 흩날리며 사라져간다.
그들은 리츠카 일행이 도착하기 직전까지 서로 간의 영혼을 건 어둠의 게임을 행했고, 그 승자는 끝까지 서있었던 붉은 그녀, 네로 클라우디우스였다.

“...왜 당신이 가로막는 것인가...! 건국왕 로물루스!”

건국왕 로물루스. 일곱 언덕에 로마를 세운 대 영웅인 그는 로마의 신조라 불리는 자,
그가 자신의 로마를 침략하는 자로서, 자신을 부정하듯이 나타난 것에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면서도, 현 시대의 로마 황제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았던 네로는 그를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조여! 그대는 나의 로마가 잘못되었다 말하는가!”
“로마는 로마다. 로마를 부정하는 일은 결단코 없다.”

그런 네로의 외침에, 어둠의 게임의 여파로 점차 사라져가는 로물루스는 조용하고 평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로마는 영원하다. 따라서 세계는, 영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그것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무슨 소리를...”
“잊지 말아라. 황제여. 로마는 로마여야 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로물루스는 빛으로 화하여 사라졌다, 이 세계의 성배를 통해 서번트로서 소환된 그는 그저 패배하여 영령의 좌로 되돌아갔을 뿐이었지만, 네로의 표정은 침통할 따름이었다.

“네로!”

리츠카 일행이 네로에게 다가온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아, 리츠카인가.”
“방금 그 서번트는...?”
“쓰러졌고,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래, 싸워서 이겼지.”
“...너와 같이 병사들을 이끌었던 부디카는?”

주변을 잠시 둘러보며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아르토리아의 물음에 네로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연합 로마의 수도를 가득 메운 잠들 듯이 영혼이 빠져나간 병사들, 방금 전까지 존재했던 서번트의 존재, 그리고 침통한 분위기를 풍기는 네로.
말하지 않아도 부디카가 어떻게 되었고, 또한 네로가 홀로 방금 전의 서번트를 어떻게 쓰러뜨렸을지 이해한 일행은 굳이 더 묻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이걸로 모든 것이 되돌아가겠지. 너희들이 말하였던 세계의 비틀림을. 그 원흉을 쓰러뜨렸으니, 이 연합 로마 제국도 붕괴─”
“아니야.”

마음을 다잡았는지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되돌아온 네로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마무리를 지으려하자, 리츠카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녀의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당신이 나오지 않았어. ...레프 라이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우렁차고 거침없는 외침이 왕궁의 입구에서 메아리치고, 커다란 울림이 되어 퍼져나갔다.

“...설마 그 녀석들을 전부 쓰러뜨리고 여기까지 올 줄이야.”

그 울림에 대답하듯이, 왕성 입구의 그림자에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금의 잔(성배)을 든 초록색의 정장과 모자를 쓴 곱슬머리의 마술사.

“좋은 말로 할 때 성배를 내놓으시지!”
“호오, 제법 호령을 낼 수 있게 되었군. 아가씨. 듣기로는 프랑스에선 대활약 했다던가.”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나선 리츠카의 곁으로 나선 잔느와 마르타를 필두로, 칼데아의 서번트가 대형을 이루는 모습을 본 레프는 입 꼬리를 비틀었다.

“그 덕분에 난 엄청 혼났단 말이지! 본래라면 훨씬 전에 신전에 귀환했을 것을! 대놓고 쫒겨났다고! 그 결과가 이런 시대에서 뒤처리에, 쓸데없는 듀얼 몬스터즈의 싸움 구경만 하고 있었을 뿐이고! 성배에 걸맞는 멍청이도 없고!”

점차 울분을 토하듯이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높아지는 레프의 말에 통신기너머의 로망은 표정을 찡그렸다.

[그런가. 그 시대를 망가트리는 인간, 또는 영령. 그 인물에게 성배를 쥐어주면 시대는 제멋대로 어긋나겠지. 프랑스에선 잔느 얼터를 통해 그러했어. 하지만 이번엔.]
“저 돌격녀 만큼 삐뚤어진 녀석이 없어서 별 수 없이 버서커나 그 깜둥이들이 직접 나섰던 거군.”
“그리고 최후에는 흑막 본인이 무대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는 거네.”

아르토리아와 마리의 보충 설명에 로망은 고개를 끄덕이며 딱하다는 투로 목소리를 내었다.

[안됐어, 레프 교수. 이 시대에는 너 같은 인류의 배신자는 미친 사람 외엔 한 명도 없었서 말이야!]
“실컷 떠들어라 쓰레기들아. 인간 따위에겐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 그리고 여러 서번트 좀 긁어모은 정도로, 이 레프 라이놀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우우웅!

레프가 쥔 성배가 스산한 울림을 내기 시작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너희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군. 성배를 회수하고, 특이점을 수복하고, 인리를 지켜? 바보 놈들. 네 놈들은 이미 어떻게 해도 안 된다. 저항해도 아무런 의미도 없어. 결말은 확정되어 있다. 네 놈들은 무의미, 무능!"

그 불길함에 아르토리아의 검은 성검(엑스칼리버 모르건)과 잔느 얼터의 분노의 불길이 동시에 치솟으려하고.

"불쌍하게도 사라져갈 네 놈들에게! 지금! 내가! 우리들의 왕의 총애를 보여주마!“

그것을 비웃듯이 레프 라이놀이 성배의 빛과 함께 변화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절망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키기 위해 목구멍을 열었다.


“...뭐, 라고....?”

모두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반응하지 못했다.
레프 라이놀은 더더욱 그러했다.

“ㅁ, 미스터 T...이 빌어처머...을...”

자신의 몸이 보였다.
점차 아래로 추락해가는 자신의 머리를 인지했다.
그리고 보았다.
빠르게도 새까맣게 부패해 가는 자신의 몸에서 황금의 잔, 성배를 가져간 붉은 머리칼의 복수의 여왕을.

“이딴, 걸....준비...커허어어...”

그것을 마지막으로 레프 라이놀은 목이 잘린 모습으로 새까만 먼지가 되어 소멸했다.

*****

“...부디카...?”

레프 라이놀이 재가 되어 사라진 직후에서야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한 일행은 눈앞에서 레프 라이놀을 참살하고 성배를 가로챈 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틀어 올려 묶었던 붉은 머리카락은 불길하게 흩날리는 핏빛처럼 크게 흩날리고, 무자비하게 휘두른 녹슨 칼은 피를 머금어 더욱 붉게 빛나고 있었다.

“다가가지마라! 저건, 우리가 알던 부디카가 아니다!”

모성애의 상징과 같았던 그 포근한 분위기는 먼지 한 톨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분위기는 그 아르토리아가 무심코 다가가려했던 네로를 직접 어깨를 붙잡고 말릴 정도로 심상치 않았다.

“─때가 되었다.”

부디카의 입이 열리자 그녀의 손 위에서 빛나던 성배가 시꺼먼 진흙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아르토리아의 두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나의 동포여, 약속의 때다.”

그 검은 진흙은 그 작은 잔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흘러넘치면서 부디카의 발밑을 연합 로마의 수도 왕성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모두 뒤로 물러서요!”
“잔느!”

저것에 서번트의 공격을 날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한 확신이 든 리츠카가 오른손의 영주가 빛나며 잔느의 마력을 증폭시켰다.


“나의 깃발이여, 나의 동포를 지켜주시옵소서!”

“나의 이루지 못한 복수를 먹어 치우고, 그 모습을 드러내라!!”



잔느의 깃발이 높게 치켜 올라가며 펼쳐지는 것과 부디카의 녹슨 검이 흘러넘치며 어느 형태를 갖춰나가던 검은 진흙을 찌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뤼미노지테 에테르넬<나의 신은 이곳에 있나니>!

─어벤지 오브 폴른 빅토리아<약속되지 못한 복수>!


빛과 어둠이 동시에 번쩍였다.

*****

[...맙소사, 그랬던 건가. 잔트 얼터 때문이 아니었던 건가!]

주변을 집어삼킬 듯 했던 성배에서 흘러넘친 검은 진흙은 보구끼리의 충돌로 인해 리츠카 일행의 근처엔 한 방울 조차 남지 않았다.

[계속해서 계측이 이상했던 이유는 저것 때문이었나!]

─그러나 왕성을 집어삼킨 진흙은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거인이 되어 있었다.
새까맣고 거대한 육체와 그 육체에서 타오르는 불길한 푸른 불꽃. 그리고 연합 로마의 수도의 지상과 하늘을 수놓은─거대하고 기하학적인 문양

“지박신!”

그 거대한 지박신의 아래에서,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부디카는 보여준 적 없는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어째서 부디카가!”
“닥터, 눈앞에 있는 자는 정말로 부디카 씨가 맞나요?!”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눈앞의 영령은 부디카가 맞아!]
“이봐요 당신, 계측기가 이상하다면서요?”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어. 애초에 이게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어!]

부디카는 미소 짓는 얼굴로 고개를 들어 지박신을 바라보고는, 녹슨 검을 들어 리츠카 일행의 뒤쪽, 지평선 너머를 가리켰다. 그러자 지박신은 그 거대한 거체를 쿵쿵거리는 굉음과 충격을 일으키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영령들 중에서도 전승이 얽혀서 본래의 자신과 다른 이들이 있어. 잔느 얼터의 경우는 처음부터 없던 존재가 잔 다르크의 전승을 비틀어서 나온 존재지만, 프랑스에서는 제대로 어벤저로서 계측되었어!]

개미만큼 작은 리츠카 일행을 상관하지 않고 금새 연합 로마의 수도를 벗어난 지박신은 느리지만 빠르게 지평선의 너머로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는 <어벤저>야!]
“잠깐만. 그러면...”

무언가를 눈치 챈 리츠카의 목소리에 로망이 확답했다.

[부디카의 클래스는 어벤저야! 라이더에서 변한 게 아니야, 처음부터 그랬던 거야! 저 지박신이 실체화되면서 노이즈가 사라진 걸로 확신했어!]

계측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던 시점은 부디카의 합류 후. 그때만 하더라도 잔느 얼터의 주변에서 일어났기에 거기가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노이즈가 사라진 후 모든 계측이 정상화된 시점에서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지박신과 함께 있었던거야. 그 말은─]
“그럴 리가, 부디카! 그대가 왜!”

그녀가 인리를 내버리고 세계를 파괴하는 자의 편에 섰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네로는 보기 드물게 흥분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너하고 담화하며 웃을 때마다.”

그런 네로에게 부디카는 미소를 지우며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얼굴 가죽을 뜯고 싶었다.”
“......!”
“너와 술을 마실 때마다, 너와 등을 맞대고 적과 싸울 때마다, 몇 번이고 내 배를 찔러 네 등을 꿰뚫고 싶었다.”

증오, 분노, 복수. 어벤저라는 클래스에 걸 맞는 거무튀튀한 감정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해하고 있었어. 역사가, 인리가 그렇다는 것을. 나와 같은 이들 또한 많다는 것을 영령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어. 그들은 서로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그 역사를 받아들이고 있었지. 그래서 나도 받아들였어. ─하지만 기회가 왔지.”
“...성배인가!”

아르토리아의 말에 부디카는 역시나, 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영령으로서 인리에 간섭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지. 성배에 의한 개찬. 거기에 이곳은 특이점. 인리의 대대적인 붕괴가 아닌, 사소한 사실 하나만 바꾸는 정도라면 문제없잖아, 그렇지?”
“뭐가 사소하다는 건가요!”
“...어벤저가 되더니 머리도 돌아간 모양이군.”
“아르토리아.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너 또한 성배 전쟁에서 그러한 소원을 이루려한 자 중 하나인데.”
“......”

부디카의 말에 아르토리아는 침묵했다.

“이제 지박신이 모든 것을 덮어씌울 거야.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하지만.”

부디카의 녹슨 검이 리츠카에게 향했다.

“조금이라도 방해될만한 요소는 없애버리고 싶네.”

부디카의 등 뒤에서 새빨간 발톱이 자라난 거대한 손이 튀어나왔다. 성 만큼이나 거대한 그 손은 리츠카 일행을 짓누르기 위해 덮쳐왔고.

─크아아아!
─쿠오오오!


리츠카의 왼팔에서 튀어나온 2마리의 용이 그 거대한 손을 튕겨냈다. 검보라색의 독 용, 스타프 베놈 퓨전 드래곤. 새하얀 수정의 용,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 그 두 마리의 용을 본 부디카는 혀를 차며 녹슨 검을 다시 지면에 내리꽂았다.

“귀찮은 일이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데도. 신대의 정령이란 정말로...”

네로를 보았을 때처럼, 증오스럽게 실체화된 정령을 노려보는 부디카의 발아래에서, 녹슨 검을 집어삼킨 검은 그림자가 앙상한 나뭇가지와 같은 탁자를 만들어냈다.

“...영주를 통해 명한다.”

그 모습을 본 리츠카는 두 번째 영주를 발동했다.

“마슈와 잔느를 빼고 모두 지박신을 쫒아가.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도 막아!”

영주를 통해 증폭된 마력이 잔느를 제외한 나머지 서번트들에게 나눠지고, 리츠카의 명령에 따라 모두가 지평선 너머로 나아가는 지박신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지박신을 고작 서번트 몇 기로 막겠다고? 어리석구나.”

그런 부디카에게 말로 대답하는 대신, 왼팔의 듀얼디스크를 전개한 리츠카의 주위로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연기는 리츠카의 주위로 확대되어 자리에 남아있던 마슈와 잔느, 그리고 페가서스와 네로를 감쌌고 뒤를 이어 부디카 마저 집어삼켰다.

─직후, 그들을 감싼 연기는 넓게 퍼져나가며 불길한색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 불꽃은 거인(Ccapac Apu)의 지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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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 글을 접었을 때가 한창 회사 부도 후에 취업이 안되던 때라 싱숭생숭 때였습니다.
그 뒤로 좀 이리저리 다른 글들 좀 쓰다가 접거나를 반복하고, 재취직 후에 자창게에 쓰다 말은 글을 다시 써보다가.
일의 바쁨에서 이어진 피곤함에 도저히 4작품 크로스는 힘들 것 같아서....접기 전에 온갖 설정들과 로그를 남겨놓은 걸 발견하고 다시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원래는 지난 주 쯤에 올리려 그랬는데....다 썼다 싶어서 용량을 보면 항상 15kb 이상이 안되서 이걸 채운다고 몇일을 또 보낸...
일창게에 다시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좀 걸리겠지만, 그래도 마의 2장은 넘어보자,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덧글

  • J 2018/10/16 02:32 # 삭제 답글

    다음화가나오길 기다리고있습니다~.
  • Cretoxyrhi 2019/02/26 02:53 # 삭제 답글

    그러나 모든 힘을 소진한 작가님은 그만...
  • 카이곤 2019/03/07 01:37 #

    온갖 떡밥이나 스토리는 다 짜놨는데, 추석 이후에 계속 팬픽만 쓰는거에 급 현자타임이 와서 오리지날로...
  • 알파 2019/08/07 16:19 # 삭제 답글

    카이곤님이 다시 부활할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ㅁ^)
    부디카의 진짜 클레스 어벤저. 그녀의 진짜 에이스 카드 [지박신 코카파크 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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